직장인이 되면서 달라진 점들이 몇 가지가 있는데 그 중 눈에 띄게
달라진 것이라면 집에서 회사까지 오는 경로 중 내가 중간에 이용할
수 있는 화장실은 어느 곳에 위치하느냐이다.
이 위치는 도보 가능 거리 5분마다 찾아두는 것이 좋은데, 그 이유는
만약 예기치 못한 상황이 발생할 경우 간헐적으로 찾아오는 아랫배의
통증을 최대 참아낼 수 있는 시간이 나에겐 5분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고려해야 할 점이라면 통증의 시기는 보통 아침 식사 후
30분 이후라는 점을 고려할 수 있다. 따라서 집에서 나온 후 전철역
까지의 도보 혹은 차량 이동 시간이 10분이 되어도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우선 첫번째 위치는 지하철역이다. 범계역을 거쳐 4호선을 타고
사당까지 오는데에 25-30분 가량. 이 사이에는 역이 약 5분 간격으로
존재하고 역마다 화장실의 위치는 하차 후 3분 이내에 있으므로
큰 무리가 없다.
2호선 사당역에서 역삼역으로 올 때엔 몇 가지 맹점이 존재한다.
가장 큰 문제는 사당역은 워낙 넓어서 비상 사태 발생시 동선이
매우 길고, 러시 아워(rush hour)에는 수많은 인파로 신속 이동이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차라리 이 사당역에서 비상 사태가 발생하면
약 5-10분 가량을 억지로 참은 후 서초나 방배역으로 가는 것이
더 현명하다.
역삼역은 비상 사태가 발생하는 1순위이다. 반드시 비축해야 하는
것은 바로 휴지. 역삼역은 화장실을 찾기가 매우 쉽지만 가장 큰
문제라면 역을 빠져나온 후이다.
역삼역에서 차병원까지는 성인 기준 도보 10-15분. 실제로 이 구간에서는
급격한 상태 이상으로 간헐적인 통증이 매우 심하다.
경사가 있어 특히나 힘을 많이 주어야 하는 곳이라는 점도 이 구간이
난코스임을 증명한다.
가장 큰 문제는, 지하철의 온도와 외부 온도가 서로 다른 데에서 오는
몸의 변화로 통증이 쉽사리 온다는 점이다.
(주 : 몸의 온도가 급격히 변하면 화장실이 가고 싶어지는 것을
느꼈던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가장 간단한 예로, 손을 씻게 되면
열이 빠져나가는 데 이 때 소변을 보고 싶어지는 충동을 많이
느꼈을 것이다.)
이 상황이 되면 길을 건넌다거나 하는 무리한 일을 하지 말고
우선 포커 페이스가 되어 아무 일 없이 행동하는 것이 옳다. 갑자기
길을 가닥가 배를 움켜잡고 주저앉을 때, 사람들이 무슨 일이냐고
물어보면,
" X 마려워서 그런데요... --;; "
하면 얼마나 쪽팔린가!
이 때엔 주변의 3층 이상 건물을 찾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그러나...
현대 사회는 매우 매정하여 화장실을 마음대로 쓴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우선 참고할 몇 가지가 있다.
1) 건물 정문이 오픈되어 있는가.
- 매정한 건물주는 아침이 되어도 문 열기를 거부한다. --;
2) 건물 앞에 건물 관리인이나 수위아저씨가 없는지 확인한다.
- 어디가느냐고 물으면 뭐라 대답할 건가!
물론 이럴 때를 대비해 들어가기 전, 건물에 입주해있는
사무실이 어떤 것이 있는지 미리 알아두는 지혜가 필요하다.
그래서 당당하게, " 저 XX사무실에 사람 찾아 왔는데요. "
물론 이렇게 한다고 하여도 건물주 왈,
" 그 사무실 아직 아무도 출근 안했는데... "
이러면 돋된다.
3) 커피숍이나 음식점이 있는지 확인한다.
- 커피숍이나 음식점이 있으면 화장실이 당연히 있을 것 같지만
대답은 노우. 커피숍, 음식점, 술집 등이 밀집한 건물에는
공동 화장실을 사용하는 경우가 드물다. 이런 곳은 보통 가게 내부에
화장실을 갖고 있거나 외부에 화장실이 있더라도 보통 자물쇠로
굳게 닫아놓는 경우각 허다하다. 따라서(!) 단순히 사무실만
잔뜩 있을 법한 건물을 택하는 것이 good deal이다.
이렇게 탐색이 끝나면 건물로 향하면 된다. 물론 이러한 건물이
주변에 없다면 별 수 없이 철판을 깔고 근처에 주유소가 있는지
확인한다. 주유소는 물론 기름 넣으러 온 손님에게 국한되긴 하지만
가서 어디가냐고 물으면 '기름 넣으러 왔는데요!' 라고 한 마디만
해주고 화장실로 가버리기 바란다. --; 뒷일은 책임 못진다.
결국 나의 경우, 오늘 새로운 화장실 탐색에 들어가서 회사를 3분의
2를 남긴 가운데 통증이 오기 시작한게다.
" 우욱... "
" 아... 하악하악... "
열심히 걸어보려 애쓰지만 언덕길을 걸어 오르는데에는 통증의 간격이
1분도 채 안된다.
" 아흑.... --; "
근처 건물을 유심히 살핀다.
' 아... 저긴 경비 아저씨가 있어! '
' 저긴 화장실이 없는 게 분명해! '
그러다가 운좋게도 경비 아저씨도 없고 1층에 화장실 문이 활짝
열려있는 건물을 찾게 된다.
허겁지겁 화장실로 뛰어 들어간다.
" 으헉... "
" 쏴아아아... "
청소하는 아주머니의 뒷모습. 다행히도 남자칸은 비어있다.
아뿔싸. 휴지가 없다!
" 아흑.. 아주머니.. 허억.. 이 화장실엔 휴지도 없네요. 끄응... --; "
" 여기 원래 없어요. "
돌아보지도 않고 대답하는 아주머니.
잽싸게 휴지통을 발견하는 주연.
' 바로 저거야! '
휴지통 맨 위에 깨끗해 보이는 휴지 뭉텅이가 있다.
얼른 슬쩍하여 화장실칸으로 들어간다.
" 총각, 옆집 화장실로 가봐. 거긴 휴지 있을꺼야. "
" 아닙니다. 으헉. 휴지 가진 거.. 헉.. 조금 있으니.. 끄응.. 그냥
여기서 ... !@$#$#%%^.. 해결할께요. --;;;; "
" 그러든지. "
갖고온 휴지에서 쓸 수 있는 부분만 골라냈다. 참한 녀석만 골라낸다고
하였던가.
그런데 이 휴지가 좀 이상하다. 잔뜩 접어 놓긴 했는데 쓸만한 부위가
그다지 많질 않다.
한번 접힌 것을 풀면 그 안은 또 못쓰고, 그걸 또 풀면 그 반은 또
못쓰고. 아.. 결국 이 사람은 한번 잔뜩 접어서 여러번 접어가며
쓴 것이다. (남자인지 여자인지는 모른다. --;)
해체 작업을 하면서 난 생각했다. 이 사람 속이 매우 안좋을 것이
분명하다는 점이다. 세상에. 초록색이다... 뜨아.
초록색 부분은 다행히도 수분이 많지 않아 제거하기가 매우 수월하였다.
이렇게 하여 두루마리 휴지 2장씩 연결된 것으로 총 4장을 마련했다.
그러니까 휴지 8칸인 셈이다. 으하하하.. 이 정도면 어딘가! --;
약 5분간의 신속한 처리를 마치고 화장실 문을 열고 당당하게 나왔다.
아줌마는 그때까지도 청소를 하고 계셨다.
" 3층 총각인가? "
생각해 보니 거긴 우리 건물은 아니었는데, 뭐 어쨌거나 우리 회사 건물
에서는 내가 3층 총각은 맞다. 뭐 아니라고 할 이유 있겠는가.
" 아.. 네. 맞아요. "
" 으응.. 그래? 3층 총각 아닌 것 같은데.. "
아줌마의 의미심장한 소리를 뒤로 하고 잽싸게 건물을 빠져 나온다.
뭐 어쨌든 오늘의 mission은 성공했다.
오늘 얻은 교훈이라면, 휴지는 반드시 가지고 다녀야 한다는 점과
그 건물 사람이라고 구라치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