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문제

작성자  
   rintrah ( Hit: 198 Vote: 1 )


어제 친구와 좀 안 좋은 일이 있었다. 여기다 쓰겠다고 다짐
했는데 시시콜콜 그러기엔 불편하고 나름대로 감동적인 이야기
여서 아깝다.

좀 무감동하더라도 어제 일에서 드러난 내 문제는 세 가지였
다.

하나는 내가 능력에 비해서 자신감이 너무 없고 왠지 모르게
남들 눈치를 본다는 점일 것이다. 이제 한편으로는 내가 스스
로 나를 대단한 사람이라고 믿고 있고, 원래부터 내게는, 내
마음에는 나 자신을 신뢰하고 사랑하며 자신의 능력을 믿는
부분이 있었다. 그런데도 여전히 '자기도 모르게' 나는 남들의
눈치를 보게 된다. 그러나, 이제는 이렇듯 문제를 인정했으며
불편할 때는 불편하다고 말할 줄도 알게 되었으므로 문제가 해
결을 볼 날도 그리 멀지 않았따고 생각한다.

두번째는 내가 남들보다 더 잘나야 한다는 강박을 아주 심하
게 받아서 거의 균형을 찾지 못한다는 데에 있다. 이것이 내
삶을 피곤하게 하고, 스스로에 대한 불신과 맞물려 남들을 배
려하는 내 마음-아주 어릴 때부터 내 마음이었던-을 위선으로
만들기도 한다-그러나 나는 기본적으로 나쁜 인간은 못되는
것 같다.

세 번째는 약한 몸 때문에 직간접적 폭력에 약한 것이 문제인
것 같다. 원래가 좀 약골이었고, 내가 잘할 수 없는 일은 즐겁
지 않기도 했고.. 여하간 나는 몸을 거의 움직이지도 않는 편
이었다. 지금은 거의 약간 대가 센 여자들보다 힘이 없는데, 이
것이 첫번째 문제와 맞물려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고집이 좋고 오만하기 때문에 한편으로는 굴복하면서도
마음으로는 남에게 굴복 못해서 곱절은 힘들어 해왔던 것 같다.

지금 이 시점까지 나는 꽤 오래 살아왔지만, 막상 스칼라쉽이
라는 면에서 이루어 놓은 것이 대체 무얼까 퍽 의심스럽다. 남
들에게 잘 이해받도록 굴지는 못하고 있지만, 나는 많이 성숙한
것도 사실이지만, 가끔은 문득 도대체 내가 여태까지 무엇을 한
걸까 하는 의문이 생겨 울고 싶을 때가 있다.

오늘 아침엔 오랜만에 울었다. 전에도 사람들이 나를 철없고
머리만 좋은 애처럼 본다고 말한 적이 있었지만, 어쨌건 내 입
장에서는 그들이 나를 자신들처럼 되도록 종용하는 것 같은 느
낌도 받고 왠지 나를 뭔가 다른 사람처럼 대하는 느낌도 받고
그렇다. 나는 그렇게 대우받지 않기 위해서 많이 노력한 건데
별 보람이 없었는지 요즘은 연달아 그렇다.

흔히들 어울리기 위해선 같이 포르노 테입도 보고 다방 레지
들 불러 놓고 수다도 하고 여자들을 꼭 무슨 물건 대하듯 말
하기도 해야 하는 것처럼 구는 것 같지만, 그런 것들은 내게
거슬린다. 내가 순진한 건 인정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사람
은 철저하게 사람이지 뭐 다른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요즘은
허영기도 많이 줄어서 김장훈이나 김경호나 베이비복스 같은
가수들 노래도 듣고 가요 프로그램도 곧잘 보지만, 그렇다고
예술 영화며 책 읽기를 두려워 할 필요도 없지 않을까? 나는
이해하고 그만큼 유쾌하고 명랑하게 읽고 보고 들을 수 있는데,
설령 다 이해하지 못한다 치더라도 원래 처음엔 그런 건데, 또
아예 이해하지 못한다 한들 굳이 말릴 까닭도 처음엔 없는 건
데 내가 그런 것들을 좋아한다고 해서 다르게 취급받아야 하
나 하는 마음이 들었다. 그러나, 이 문제는 그들 입장에선
내가 다르고 어려워 보였을지도 모르겠다 싶고 그들이 나를 무
시하지 않는 한 서로 조금 어려워 하는 상황은 그냥 받아들이
기로 했다.

어제 K라는 거의 만나지도 못하던 친구가 내가 정신과 의사
가 되고 싶다고 약간 소심하게 말했더니 니 정신이나 제대로
치유하라는 투로 말한다. 순간 열이 올랐다. 지금 나는, 그네
들이 뭐라건 거의 문제가 없고, 있더라도 해결할 만한 탄력적
인 자세도 잘된 편이고, 있더라도 남들보다 많지도 않다. 오
히려 K는 내겐 왠지 어두워 보이고, 꼭 그들의 대변자인 것
처럼만 보일 뿐인데. 그는 나에게 너무 주제넘은 충고를 했
고 나는 그게 굉장히 화가 났다. K 옆에 있던 M은 내가 즐겁
다는 건 이해 안하더라도 나에게 굉장히 잘해주려고 해왔는데
M이 나를 생각해서 해주는 말이 꼭 K가 그들의 의견을 대표하
는 것처럼 들렸다. 정나미가 떨어졌다. 이럴 때면 그런 사람
들 아무도 만나고 싶지 않은 마음이 든다.

사람들은 이런 상황에서 꼭 마치 나같은 사람이 너무 잘나서
따위의 조롱하는 어조에 보태, 내가 모나서 사람들을 무시하
는 거라고 말하지만, 웃기는 말이다. 누가 되었더라도 자기가
능력이 있고, 잘 해보려는 마음에도 불구하고 경계받고 무시
받는데 마냥 사람 좋게 굴 수 있을까? 당연히 온당한 무시를
되돌려 주고 적대적이 되고 싶은 게 인지상정이긴 할 것이다.

내 입장이 하도 억울해서 이렇게 길게 썼다. 그러나, 나는 되
도록 여전히 그들의 입장에서 이해하려고 노력할 것이고, 아까
도 말했지만 내가 그들과 다른 인간이라는 것, 그래서 약간의
거리가 생길 수밖에 없다는 것은 받아들이기로 했다. 나는 이제
만나는 동창이 행여 나를 어려워하더라도 살갑게 불편해하지 말
라고 달래주는 일은 없을 것이다.


본문 내용은 9,212일 전의 글로 현재의 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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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rst Written: 02/26/2009 00:5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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