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나를 완전히 떠나버린 줄 알았었다. 사랑이든 기회
든... 한 번 떠나면 영원히 떠나는 건 충분히 많다.
지난 해 크리스마스 선물로 좋은 목도리를 선물 받았었다.
회색빛 양털로 만들어진 이탈리아산 목도리였는데 얼마나 포
근했던지 그간 난 코트는 벗어도 목도리는 항상 매고 있을
정도였다.
그게 사라져버렸던 게다. 게다가 더 나를 아쉽게 했던 까
닭은 아무런 기억도 없이 갑자기 내 눈앞에서 실종돼 버렸기
때문이었다. 어디서 잃어버렸는지 안다면 찾아보는 노력이라
도 하겠건만...
그런데 오늘 아침, 피곤한 눈으로 집을 가고 있었는데 웬
아주머니가 아는 척을 하셨다. 알고 보니 근방 술집 주인이
셨다. 그 아주머니께서는 목도리가 가게에 있다며 찾아가라
고 말씀해 주셨다.
얼마나 기쁘던지, 다시는 보지 못할 거라 생각했었는데...
온갖 피곤함을 단 번에 날려버릴 정도로 상쾌한 일이었다. 1
월 말 즈음에 그 가게에서 낮술을 마신 적이 있었는데 그 날
도 역시 기억이 끊길 정도로 술을 마셨고 깨어나 보니 집이
었던 게다. 그곳에 목도리를 놓고 왔었나보다.
며칠 전에는 다이어리 역시 잃어버렸었다. 지갑 대용으로
쓰는 다이어리라서 그곳엔 내 대부분의 것들이 들어있었는데
다행히도 그것 역시 다음 날 다시 찾긴 했었다. 물론 CD 50
장을 사려고 준비해뒀던 자금을 포함한 20만원 가량은 모두
사라지고 없었지만. 훌쩍. !_!
그렇게 요즘 난 많이 잃어버리고 또 많이 되찾고 있다. 24
살, 너무도 짙게 어른스러움이 느껴지는 요즘, 실은 전혀 그
렇지 않은데, 생각은 아직 고3 아이들처럼 느껴지는데, 돌이
켜 생각해 보면 역시 난 많이 잃어버리고 또 많이 찾았었던
것 같다.
영원한 사랑을 갈망했지만 결국 영원할 수 없었고, 좋은
기회가 왔어도 번번이 멍하니 바라만 본 채 잡지 못하곤 했
었다. 아마도 그런 사랑, 그런 기회를 잘 잡아냈던 사람들이
불멸의 사랑을 했고, 또 위대한 사람이 되었었겠지...
그렇지만 조급해 하지 않는다. 무엇이든 나를 그저 스쳐
지나가도 좋다. 굳이 내게 머물러 달라고 애원하지 않는다.
거룩한 인류의 역사에 보잘것없는 내 이름 석 자 남기기 위
해 치사해지고 싶지는 않다. 당당하게 세상과 마주서서 오는
손님, 반갑게 맞이하고 떠나가는 손님, 맑게 미소지으며 보
내주고 싶다.
그리고 요즘 난 오목에 빠져있다. 중학생 시절에도 난 오
목에 빠져있었는데 사실 조금 자만하고 있었었다. 고등학생
시절에는 천리안에서 전국 랭킹 10위안에 들 정도의 실력은
갖추고 있었기에 누군가 특기,를 물어본다면 대개 오목,이라
고 말해주곤 했었다.
그런데 오늘 난 무진장 깨졌다. www.netomok.com으로 접속
하면 오목 전문 사이트가 있는데 그곳은 나의 무덤이었다.
그래서 사람은 겸손해야 하나보다. 이 넓고 넓은 세상에
이토록 고수가 많은데 고작해야 이 정도밖에 안 되는 내가
떠들어대는 건 너무도 비참한 일이다.
랭킹 9위와 얘기를 했다. 그는 www.whiteomok.co.kr이라는
전문 사이트를 만들어 동료들과 항상 토의하고 하루종일 오
목의 수를 연구한다고 했다.
그럴만한 일이다. 대개의 사람들 생각대로 오목은 단순한
게 아니다. 바둑 잘 두진 못하지만 볼 줄만 아는 내가 보기
엔 오목 역시 바둑 못지 않게 한 수 한 수가 게임의 승패를
좌우할 정도로 중요하다. 고수들간의 오목에선 이미 초반에
결과가 정해진다. 초반에 한 수 잘못 두면 후에 어처구니없
는 실수하지 않는 한 결코 상대를 이길 수 없다.
많은 것을 새롭게 느끼고 있다. 예전엔 난 마치 StarCraft
의 빌드오더처럼 처음 날일 자 정석을 주특기로 썼었는데 요
즘 느끼기엔 빌드오더 자체가 중요한 게 아니다. 상황에 따
르는 융통성, 그게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 같다. 물론 오목에
도 정석이란 게 있다. 어쩌면 바둑보다도 그 정석의 강요는
더욱 심할지 모르겠다. 바둑과 달리 오목에서는 정석대로 하
지 않으면 바로 패로 연결되니. 그렇지만 처음 세 수는 상대
의 수에 따라 확연히 달라지는데 그 세 수가 게임을 좌우하
는 모든 게 된다.
오묘한 일이다. 고작해야 세 수가 수십 수가 난무하는 게
임의 모든 걸 좌우하게 되다니.
첫 단추를 어떻게 끼우냐가 중요한 일인 게다. 자, 이제
졸업을 기다리며 새롭게 세상에 나갈 준비를 하고 있는 너희
모두 바른 첫 걸음으로 삶을 더욱 아름답게 만들길 바란다.
첫 단추가 중요하다.
나도 잘해봐야겠다. 그렇지만 지난 1월, 핸드폰 전화료 19
만원은 정말 너무했다. 훌쩍. 어떻게 먹고살라는 거야.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