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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처) 문화일기 167 달은 도둑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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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chor ( Hit: 199 Vote: 9 )

+ 달은 도둑놈이다, 박일문, 민음사, 2000, 한국, 소설

1. 각설하고. 짧게 기록을 남겨둔다.

2. 적멸,로부터 시작된 박일문 소설의 재미와의 단절은 이
제 완전히 고착화되어 가는 듯 싶다. 그의 소설에서 더 이상
거리의 경박한 즐거움을 기대한다면 실망만을 발견할 게다.
허나 전적으로 신뢰할 수는 없지만 앎, 깨달음의 즐거움은
반드시 건질 수 있으리라 본다.

3. 전형적인 박일문 소설의 스타일을 그대로 따라한 소설
이었다. 그가 지금까지 지적 받아온 지적 과시, 이제는 다소
식상한 글쓰기 모티브는 여전히 반복되었고, 스스로 부인하
지만 어쩔 수 없는 독자에 대한 텍스트의 보이지 않는 강요
또한 계속되었다.

4. 이 책은 문학에 관한 반성문이자 고찰서이다. 소설은
새천년, 이 광폭하리 만치 급격한 사회적 변동 속에 문학이
어떤 모습을 걷고 있고, 또 어떻게 앞으로 걸어나가야 하나
한 번쯤 생각하게 한다.

5. 내가 무명에 더 가까운 박일문에 몰입하는 까닭은 오직
그를 통해서만이 반성할 수 있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그의 초월적 삶의 자세는 날로 사회화되어 가고 있는
내게 있어서 반성의 계기가 되고 또 잊고 있던 내 지난날,
꿈꾸었던 삶의 자세를 다시금 일깨워주곤 한다.

6. 박일문은 죽음 앞에서 어떤 생각을 할까 상상해 봤다.
아마도 기쁘게 죽음을 맞이하리라. 책 한 권 덜 팔려 춥고
배고팠지만 자신의 뜻대로, 하고자 하는 대로 살 수 있었음
에 행복해 하리라. Oh, Carpe Diem, Panta rhei,
homologoumenos zhen te physei!

7. 문학, 그리고 사회 전반의 문화에 다소 뜻을 두고 한창
열정이 앞서던 시절 깊은 각오 속에 시작된 이 문화일기든,
끄적끄적이든, 그간 숱한 친구들의 썰렁하단 외침 속에서도
잘 버텨왔지만 이제는 스스로 그만 둘 때도 된 듯 싶다. 세
상의 많은 것들이 그러하듯이 이 내 지난날의 각오 또한 그
렇게 소리소문 없이 서서히 사라질 것을 생각하면 다소 쓸쓸
하고, 또 허무해지곤 한다.

8. 오랜 시간동안 틈틈이 책을 읽어냈다. 특별히 책 읽을
시간을 두지 못했고, 또 시간이 나면 잠자는 일에 급급했기
에 더욱 그러하지 않았나 싶다. 책을 읽으며 나 또한 반성에
시달렸었다. 나는 스스로 너무나도 사회친화적이 아닌가 걱
정하는 사람이다. 적당히 사회에 삐긋거리며 충돌하고 마찰
하고 싶은데 입으로는 가끔 사회에 대해 힐난하면서도 실상
행동은 참으로 사회친화적이다. 나는 내가 요즘 하고 있는
일에 있어서 단기간의 급성장을 대단히 만족하고 있고, 또
자부심 또한 갖고 있는 그저그런 놈이다. 또한 이는 함께 일
하는 사람들의 디자인적인 능력이라기 보다는 내 지극히 통
속적이고 간사한 대인관계 능력 덕택이라고까지 생각하는 그
저그런 놈이기도 한데 그러기에 더욱 죄책감에 시달리곤 한
다. 나는 양심수이고 싶다. 나는 오히려 70년대에 젊음을 보
냈으면 더 좋았을 것을, 하고 생각하곤 한다. 나는 지금의
이 시대가 나 같은 놈에게 너무나도 맞는 세상이라서 사회
정의가 훼손되는 것 같아 옛 영웅들 앞에 부끄럽다. 그럼에
도 이런 반성할 수 있는 나를 통해 그나마 내 과오들이 스스
로 용서되는 또한 그저그런 놈일 수밖에 없다.

9. 박일문 소설을 읽고 나면 항상 혼돈스러워진다. 과.연.
어.떻.게.살.아.야.할.까. 이 천박한 거리의 문화 속에 빠져
들어야 할 지, 아님 홀로 고고히 유유자적해야 할 지. 그럼
에도 나는 안다. 나는 아마도 지금처럼 그저그런 놈으로 살
아갈 것임을.

10. 이 시대 마지막 남은 70년대의 영혼이자 새천년 가장
신지식인으로부터 벗어나 있는, 홀로 고군분투하는 박일문씨
에 간사하고 고마운 박수를... 짝.짝.짝.

000421 20:10 文學, 그리고 21세기 사회. 양립할 수 없는 불행한 시대의 인류를 위하
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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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rst Written: 02/26/2009 00:56:26
Last Modified: 08/23/2021 11:46: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