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tte) 슬픈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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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야 ( Hit: 193 Vote: 14 )

난 지금도 시장 길을 지날 때면 시장 구석진 자리에서 나물을 팔고 계시는 할머니를
보곤 한다. 예전에는 이 시장 길을 지나는 것이 고통이었다.
하지만 이젠 나에게 이곳을 지날 여유도 없다. 어쩌다 가끔씩 들려보는 이곳 시장터.
난 이 곳에서 장사를 하는 한 분의 고귀한 사랑을 받고 자랐다.
"엄마 시장 갔다 올 테니, 밥 꼭 챙겨먹고 학교 가거라"
난 장사를 가시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고도 잠을 자는 척 했다. 이 지겨운 가난.
항상 난 이 가난을 증오했다.
그리고 언젠가는 벗어나고 말리라는 다짐을 굳히곤 했다. 내가 학교 가는 길 시장 저
귀퉁이에서 나물을 팔고 계시는 어머니의 모습이 보인다.
난 어머니가 나를 발견할까 봐 얼른 도망친다. 우리 부모님은 막노동을 하셨다고 한다.
일하는 도중 철근에 깔리신 어머니를 구하시려 다 아버지는 사망하고 어머니는 한쪽
다리를 잃으셨다고 한다.
일을 가시지 못하시는 어머니는 나물을 캐서 팔곤 하셨다. 난 항상 들판에 절뚝거리시
며 나가시는 어머니가 싫었고 밤새 다듬으시는 모습도 싫었다. 더더군다나 시장 한 귀
퉁이에서 쪼그리고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구걸 비슷하게 장사를 하는 것도 맘에
들지 않았다. 집에 돌아오니 퉁퉁 부은 다리 한쪽을 주무르시며 나물을 다듬고 계신다.
나를 보자 어머니는 기쁜 낮으로 3,000원을 주신다.
난 그 돈을 보자 화가 치민다. "난 거지 자식이 아니란 말이야 이런 돈 필요 없어!"
그리고는 밖으로 나와 버린다. 다음날 아침 난 어머니가 시장간 틈을 타 집에 가서 책
가방을 들고 학교에 간다. 학교길 약수터에서 간단히 세수를 한 다음 물로 배를 채운
다. 난 비록 풍요롭게 먹고 입지는 못했지만 공부는 악착같이 했다.
그래서 부잣집 자식 놈들보다 공부는 항상 잘했다. 하지만 그 자식들에게 사는 미움도
만만치 안았다. 그날 4교시가 끝날 무렵 아이들이 갑자기 웅성거린다. 복도를 보니
어머니가 절뚝 거리시며 교실로 들어선다. 선생님 드리려고 장사하려고 다듬은 나물을
한 봉다리 들고서....
어머니는 내가 어제 들어오지 않자 걱정이 되셔서 학교에 오신 거란다. 선생님과의 면
담을 끝내고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아이들이 한마디씩 한다.
"야! 이민석 너네 엄마 병신었냐?" 그 놈은 그 잘난 부잣집 아들 현우였다.
현우는 어머니의 걸음걸이를 따라 한다. 무엇이 우스운지 반 아이들은 웃어댄다.
난 화가 나서 그 놈을 정신없이 두들겨 줬다. 그리고서는 교실을 나와 버렸다.
저녁무렵 집에 가니 집 앞에 잘 차려 입은 여자와 현우가 어머니에게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아니 아비 없는 자식은 이래도 되는 거야? 못 배우고 없는 티 내는 거야 뭐야. 자식
교육 좀 잘 시켜, 어디 감히 우리집 귀한 자식 얼굴을 이렇게 만들어 놓느냔 말이야.
응. 어머니라는 작자가 병신이니 자식 정신이 온전하겠어?" 어머니는 시종일관 죄송하
다는 말뿐이다.
난 그러는 어머니의 모습이 싫었다.
집에 들어가도 어머니는 아무 말씀 없으시다. 난 어머니에게 한마디한 다. "다시는 학
교에 오지마 알았어? 창피해서 죽는 줄 알았다 말이야."
"그래 미안하다 난 민석이가 걱정이 되어서......" "난 차라리 엄마가 없었으면 좋겠
어" 난 해서는 안될 말을 해버렸다.
슬픔을 보이시는 어머니를 못 본척하며 자는 척 했다. "난 꼭 성공할거야." 밤새 이렇
게 외쳤다.
다음날 아침 수업료라며 엄마가 돈을 쥐어 주신다. 얼마나 가지고 계셨는지 너무도 꼬
깃하고 지저분한 돈이었다.
학교에 가니 선생님이 부르신다. 적어도 선생님만은 내편이셨다. 어머니께 잘 해드리
라는 말로 나를 위로하신다. 선생님께서 나물 맛있게 먹었다고 어머니께 전해 달란다.
난 그러마 했다. 하교 길에 길 모퉁이 배추가게 쓰레기통에서 배춧잎들을 주어 모으시
는 어머니를 본다. 난 모른 척 얼른 집에 들어와 버렸다. 그날 저녁 배춧국이 밥상에
올라온다.
"이 배추!" 난 소리를 질렀다. 어머니께선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배추가게 아저씨가
팔다 남은 거라고 버리기 아까우니 가져가서 민석이 국 끓여 주라고 하더구나"
어머니의 말에 난 또 화가 나기 시작했다. 정말로 난 거지자식이 되어 버린 것만 같
았다.
나를 이렇게 비참하게 하는 어머니가 너무도 싫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날이 어
머니 생신이셨다고 한다.
~~~~~~~~~~~~17년 후~~~~~~~~~~~~~~~
난 의사가 되었다. 가정도 꾸리고 병원도 장모님께서 개업해 주셨다. 난 너무도 풍요
로운 생활에 어머니를 잊고 살았다.
돈은 꼬박꼬박 어머니께 보내 드렸지만 찾아가 본적은 없었다. 아니 어머니라는 존재
를 잊고 살려고 노력했다는 해석이 옳을지 모르겠다.
그런 어느날..... 퇴근길에 우리집 앞에 어느 한 노인과 가정부 아주머니가 싸우고 있
는걸 봤다.
다가서니 그 노인은 내가 가장 잊고자 하는 어머니였다. 전보다 더 야윈 얼굴 허름한
옷차림 그리고 여전히 절뚝거리는 다리......
어머니는 나를 보자 기뻐하신다. "민석아 많이 좋아졌구나." 난 어이 없다는 듯 "사람
잘못 보셨습니다." 난 차갑게 한마디 한다.
뭐가 모자라서 나에게 온단 말인가.... 그 동안 생활비로도 모자라단 말 인가? 민...
석....아....어머니의 떨리는 목소리.
"전 민석이가 아니라 최영호입니다." 난 이 한마디를 끝으로 집으로 들어가 버린다.
가정부가 애써 돌려 보낸 후 별 노망든 할머니가 다 있다고 푸념을 늘어 놓는다.
그 후 한달 동안 난 악몽에 시달린다. 할 수없이 난 다시는 되돌아 가기 싫은 시장이
있는 우리집으로 발길을 돌린다.
시장 한 귀퉁이에 여전히 나물을 팔며 기침을 하시는 어머니의 모습이 보인다. 난 가
만히 곁에 가서 지켜본다.
나물을 사려는 한 아주머니가 묻는다. "할머니는 자식이 없나요?" "아니여 우리 아들
이 서울 큰 병원 의사여. 자꾸 나보고 같이 살자고 하는디 내가 싫다 혔어. 내가 살면
얼마나 산다고 자실 신세를 져. 요즘도 자꾸 올라오라는 거 뿌리 치느라고 혼났구먼.
우리 아들 같은 사람 세상에 둘도 없어. 우리 아들이 효자여 효자." 어머니는 자식자
랑에 기분이 좋았는지 나물을 많이도 넣어 드린다.
그런 어머니를 뒤로하고 난 예전의 집으로 향한다. 아직도 변한게 없는 우리집 거의
쓰러져 가는데도 용캐 버티고 있었다. 이런곳에서 살았다는게 생각에 없을 정도였다.
난 방틈으로 돈봉투를 넣어놓고는 돌아선 다. 1년이 지난후 난 어머니의 사망소식을
고교담임 선생님으로부터 듣게 되었다. 그래도 무슨 이유에서인지 내 발길은 어머니의
집으로 향하게 되었다.
시장에는 어머니의 모습이 정말로 보이질 않았다.
도착한 곳에는 선생님이 혼자 집을 지키고 계셨다. 나를 알아보신 선생님 아무 말씀도
없으시다. 무거운 침묵.......
"민석아 내 옆에 와서 잠깐 앉아라." 선생님이 처음으로 하신 말씀이셨다. 선생님께선
낯익은 보따리를 나에게 주신다.
바로 어머니가 가지고 다니시던 나물보따리 셨다. 이 보따리라 밤새 다듬은 나물들을
싸서 시장에 팔러 가시곤 하셨다. "풀러 보거라"
선생님의 말씀대로 난 보따리를 풀었다. "돈 아닙니까?" "그래 돈이다 네 어머니가 너
에게 주시는 마지막 선물이다.
그 동안 네가 돌아 올까 봐서 그리고 혹시나 네가 성공하지 못하면 다른 사업을 할 수
있도록 모아두신 돈이란다. 너 하나 믿고 무슨 미련인지 이곳을 떠나지 못하고 너를
기다렸다.
너에게 잘해주지 못해 항상 미안해 하셨다.
내가 가끔 네 어머니의 말 동무가 되어드렸단다. 그래서 나에게 네 어머니의 유언을
전하도록 부탁하셨다.
그리고 네가 모르고 있었던 사실들도 함께 말이다." 선생님의 얘기들은 나에게 충격으
로 다가왔다. 선생님의 얘기는 이러했다.
내가 아주 어렸을 적 나를 키워주신 부모님은 퇴근길에 쓰레기통을 뒤지고 있는 나를
발견 했다고 한다. 자식이 없던 터라 나를 대리고가서 키웠다고 한다. 늦게 얻은 자식
이라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고 한다. 어린 나를 집에 혼자 둘 수 없어 항상 나를 공
사판에 데리고 다니셨다고 한다.
그런 어느날 무너지는 철근 밑에 있는 나를 보고 어머니가 뛰어 드셨다고 한다.
그리고 아버지도 어머니와 나를 구하기 위해 몸을 던지셨다고 한다. 그 사고로 아버지
는 돌아가시고 어머니는 한쪽 다리를 잃으셨다고 한다.
그러니까 난 아버지의 목숨과 어머니의 다리로 살아난 운 좋은 놈이라고 한다. 혼자가
되신 어머니 다리마저 불편하신 어머니께 주위 사람들은 나를 고아원에 보내라고 하셨
단다. 하지만 어머니 나를 자신의 목숨보다 소 중이 여기셨기에 나를 버리시지 않고
키우셨다고 한다.
그 후 어머닌 아버지를 잊기 위해 이곳으로 옮기셔서 나물을 팔며 나를 키워 오신 거
란다.
내가 대학 다닐 때 암인걸 아신 어머니는 자신의 몸보다 내 학비를 마련 하기위해 병
원에도 가지 않으셨다고 한다. 암 전문의로 명성을 날리는 내가 내 어머니를 암으로
돌아가시게 하다니..... 어머니는 마지막으로 나를 한번 보고자 물어 물어 서울까지
오셨다고 한다.
그런 어머니에게 난 가슴에 못을 박고 말았다. 자신이 낳은 자식도 아닌데 자신의 목
숨보다 소중히 여기셨던 어머니를 버린 나 자신을 용서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나를
조용히 내려보시는 어머니의 사진이 잔잔한 미소를 보이고 있다.
이런 자식마저도 어머니는 사랑하시나 보다. 내 어머니 사랑하는 내 어머니.... 그 후
난 시간이 날 때마다 가끔씩 이곳을 들른다. 혹시나 어머니가 나물을 파시고 계실 것
같은 착각에 말이다...




본문 내용은 9,073일 전의 글로 현재의 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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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rst Written: 02/26/2009 00:56:26
Last Modified: 08/23/2021 11:46: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