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제는 문학을 읽거나 영화를 보지 않기에 더 이상
쏟아낼 이야기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축척 되는 양분 없
이 배출해버린 무지와 몽매의 산물은 내가 바라는 이야기가
될 수 없음은 자명하다. 또한 내가 생각하여야할 것이 문학
이나 음악, 영화 같은 것들이 아니라 너무나도 눈부시게 발
전하고 있는 기술과 날로 좁아지는 세계라는 것 역시 알고
있다.
그러기에 그 어느 해보다도 뜨거운 열정으로 시작한 2000
년, 새천년의 첫 해는 내게 있어서 후회 없는 한 해였다고
자위한다. 나는 어쩌면 내 삶을 뿌리 채 바꿔버릴 지로 모르
는 큰 변혁의 고리를 지난 2000년에 시작했었노라고 후에 회
고할 지도 모른다. 그만큼 지난 2000년에 나는 많이 피곤해
했고, 또 그런 만큼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해왔다
고 자부한다.
나는 세계를 생각한다.
세계.
나는 어렸을 적부터 세계를 꿈꿔왔지만 지금처럼 세계에
대한 가슴 벅찬 열정을 느끼는 것은 학창시절 이후 처음인
것 같다. 아처/achor/我處 프로젝트는 세계에 대한 내 꿈을
가득 실은 내 나이 15살의 커다란 첫 걸음이었다. 나는 내
자신이 가장 한국적인 사람이 되기보다는 가장 세계적인 국
적불명의 코스모폴리턴이 되길 바랬다.
그리고 10년이 흘러
나는 다시 세계를 생각한다.
세계.
자유로운 미국을 생각하고, 광활한 중국을 생각하고, 다양
한 일본을 생각한다. 새롭게 시작한 21C는 틀림없는 격변기
이다. 시공을 초월하는 성장을 가능케 하는 유일한 힘, 격변
기. 그 얼마나 부러워하던 전후의 혼돈이란 말인가.
나는 또한 알고 있다. 무언가 얻고자 한다면 반드시 무언
가 포기해야만 하는 세상의 진리를. 그래야만 한다면 나는
기꺼이 포기할 준비가 되어있다. 오직 젊은 날에만 누릴 수
있는 특권들을 포기하라 하여도 나는 내 마음의 소리에 귀
기울일 것이다. 사랑, 쾌락, 즐거움 대신에 피곤함과 외로
움, 고립과 단절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하여도 나는 꿋꿋하
게 걸어나갈 자신이 있다.
또한 잊지 않을 것이다. Velvet Goldmine.
그 어떤 젊은이가 젊은 날에 한 번쯤 세상의 변혁을 꿈꾸
지 않았었던가. 나는 주제 파악하지 못하는 몽상가 대신에,
실력은 없고 오직 경쟁심과 질투심만 남아있는 옛 동지 대신
에 세상의 조류와 외로운 고독을 택할 것이다. 나는 아직 내
가 표준을 만들어 낼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렇
다면 충실히 따라갈 것이다. 내게는 나와 경쟁하고 싶어하는
친구가 아니라 함께 힘을 모을 동지가 있을 뿐이다.
2001년.
나는 그토록 기다려온 자유를 다시 찾는다. 2년 반 동안
기다려온 자유.
부디 1년 후 이 즈음, 다시 연초를 반추했을 때 꼭 지금처
럼만, 내 지난 1년에 최선을 다해왔다고 기억할 수 있다면
좋겠다.
또한 내 주위의 모두들 소원성취 하기를 기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