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를 먹는다는 건
해야함에 대해 조금은 쉽게 체념하는 것.
그리고
죽게 행복한 것도, 미치게 슬픈것도 없어져가는 것.
추석연휴를 동생과 함께 보낸다.
갈 곳도 없고 오라는 곳도 없어
이렇게 둘이서 지낸다.
입대를 앞둔 동생은 입대전에 하고픈 일들을
나와 하려한다.
참 신기한 아이다.
정말 친한 친구와 미운정든 선배와의 사이에서
둘의 푸념을 듣는다.
그 어떤 감정에서도 한발 물러서 있는 나를 발견하곤
참 씁쓸해한다.
나도 늙었구나.
중학교 1학년이 되면서 서울에 와서 가장 경악했던건..
서울 아이들은 친구가 싸울때 절대 편들어주지 않는다는 거였다.
부산 친구들은 누군가 자기 친구가 다른 사람과 싸우면
자신의 친구가 잘했든 아니든 열렬히 지지를 해주고
힘이 모자란다 싶으면 대신 싸우기도 하는데
서울 아이들은 강건너 불구경하듯
친구가 아닌듯
무관심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쩌면 그것 나이탓인지도.
극단적인 감정이 사라져간다는건
살아가는데 불필요한 일들이 없어진다는 얘기겠지만
어찌보면
예전처럼, 비록 찰나적인 거라 하더라도,
순수하게 행복하고 순수하게 즐거울 순 없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무슨 연유에선지 너무 나이를 먹어버려서
사랑할 수 없나보다.
모든 감정에서 모든 사람에게서
한걸음 물러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