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마지막으로 들렸던 날 이후 설거지를 한 번도 하지 않아 씽크대는 더이상 쌓일 수도 없을 정도야.
누군가 정리해 주지 않는 이곳은 내 뜻대로 나날이 최대 지저분 수치를 갱신해 가고 있고,
라면에 지쳐버린 요즘의 내 주식은 네가 사놓고 간 네스퀵을 우유게 타 먹는 것이기도 해.
별미 비빔면은 다 먹었지만 오이는 여전히 그 야채실에 그 상태 그대로 있겠지.
나는 이렇게 덩그러니, 그대로 방치된 사물들을 잘 이해하는 편이야.
밥을 좀 해먹어야겠다고 게맛살을 사왔으면서도
하룻밤이 꼬박 지나도록 그냥 봉지채 던져놓곤 냉장고에 넣지 않아 상하게 할 정도로 여전히 게으르고.
나는 대체로 주어진 상황을 잘 이해하고, 승인하고, 적응하는 편이기도 해.
너는 너무 행동적이었다고 회상해.
너의 그 행동들은 네 빈자리를 내게 더 크게 느껴지게 하고 있단다.
너는 가만히 놔둬도 좋을 내 공간에 너무 많은 짓을 저질러 버린 것 같아.
내 이 자그만 공간은 어딜 가도 네 흔적들도 가득 차 있을 만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