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처를 기억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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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inr ( Hit: 2092 Vote: 107 )

소주를 넉 잔 마셨다.

어지러웠다.

의사 선생님 말씀대로 한 잔만 마시려 한 것이 그만 혼자 흥에 취해 네 잔을 마셔버렸다. 문득 나의 스무 살 때가 생각났다. 아니, 사실은 오래전부터 나의 스무 살을 더듬기 시작했다. 스무 살을 기억하려고 애쓰는 것은 얼마 전, 수년 만에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을 읽으면서 시작되었던 것 같다. 나의 스무 살은 건조했다. 외면상으로는 다정다감하며 상냥해 보였을지 모르지만 어쩐지 무척 건조하다는 생각이 많았다. 하루키의 소설이 먼저였는지 아니면 나의 건조함이 먼저였는지는 구분하기 힘들지만 어쨌건 이런 연유로 하루키가 나의 생각을 잠식하던 시절이었다.

그런데 최근 들어 하루키의 최신작 소설을 읽으며 누군가 변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한마디로, 그의 소설은 무척 유치해 보였다. 내용은 전혀 변한 것이 없었지만 굉장히 어색했다.

나는 6년의 세월을 견디면서 부단히도 변했지만 하루키는 6년 전의 모습에서 전혀 변한에게 없었다. 난감했다.

무엇이 변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별로 피곤하지 않은 날이면 잠들기 전에 가끔씩 생각하곤 했지만 답은 나오지 않았다.

그러다가 나우누리를 통해 스무 살 때 나의 문장들을 볼 기회가 생겼다. 진심이 결여되어 있다 치더라도 문장은 훌륭하다고 자찬해 버렸다. 아……. 지금의 나보다는 낫다고 자찬해 버렸다.

아처의 글들을 훔쳐보았다. 아처와 나는 많이 다르지만 그가 쓴 글을 보면 나의 스무 살이 생각난다. 아처는 지금도 나름대로 멋있게 사는 것 같았다. 그리고 아처의 문장을 흉내내보려 노력했다. 아쉽게도 나의 노력에 대한 결과는 마치 2년 2개월 동안 삽과 총을 들고 한숨만 쉬던 시절을 보낸 뒤 수능의 미적분을 풀려고 했을 때의 좌절감과 비슷한 것이었다.

아처의 문향소에는 Love가 있고 Fiction이 있고 문화 일기, Life, Society, 끄적끄적, Experience, Research, Etc, At issue, Composition, Gallery, Travels가 있다. 글은 공유되지 않으면 아무런 만족이 없는 것 같다. 어제 TV를 보니 이외수가 ‘지혼자 볼라구 글 쓰는 놈은 세상에 아무도 없다.’고 하더라. 아처도 언젠가 꽤 멋진 유명 인사가 되면 (약간의 편집을 거쳐) 지금의 글들이 공유될 것 같다. 언젠가 생각의 합일화를 통한 다수의 아처화를 실현하려는 아처제국의 야심을 들은 적이 있는데 지금 아처의 개인적인 노력은 그 때를 대비한 전초 작업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나 역시 나의 글이, 나의 생각이 공유되기를 바랬던 시절이 있었다. 그렇지만 지금은 사상의 세뇌가 나에게, 혹은 전 인류에게 탐탁한 실효를 가져다 줄 것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사람들이 무슨 생각을 하며, 누구를 존경하며 살든 간에 미싱은 잘도 돈다. 돌아간다.

그저 그리울 뿐이다. 6년 전의 나는 꽤 멋진 놈이었다...



본문 내용은 8,218일 전의 글로 현재의 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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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kima
반가워. 내가 아는 그사람이 맞다면..

 2002-10-11 17:2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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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horEmpire
삶이 아깝다
삶이 아깝다. 삶이 아깝다. 삶이 아깝다. 나는 알고 있다. 이렇게 흘러 가면 결국 아무 것도 아님을... 그러나 이제 와서 그 흐름을 거슬러 오르기엔, 삶이 아깝다. 그간 내 모든 걸, 아낌 없이 바쳐온 내 청춘이 아깝다. 내 생애, 결국 나를 위함이 아니던가. 흩어지리라. 너희의 모든 욕망과 편견과 허영과 아집은 내 아리따울 청춘의 이름 앞에 흩어지리라. 흩어지리라. 내 모든 욕심과 오만과 허세와 독선은 내 아리따울 추억의 이름 앞에...
 2008-10-07 01: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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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rst Written: 11/06/1999 04:17:00
Last Modified: 03/16/2025 19:3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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