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처) 치한의 기쁨

성명  
   achor ( Vote: 12 )

내가 그 치한의 제자가 되기로 결심한 이후
혹독한 수련과 연습을 거쳐
나 또한 스승님의 명성에 금가게 하지 않을 만큼의
추행기법을 익혀내고 말았다.

달라진 것은 나만이 아니었다.

그토록 자신을 비관했던 스승님 역시
인생의 새로운 길을 찾은 듯이
항상 얼굴에는 빛이 가득했다.

오늘은 그 첫 실전날이다.
스승님이 지켜보시는 가운데
그간 연습해 온 모든 기량들을
마음껏 선보일 중대한 기회란 얘기다.

스승님과 난 어느 삐리리한 육교 및 버스정류장에서
너무도 안 오는,
과연 이 버스가 다닐지 조차 의심되는
14-3번 버스를 탔다.

버스가 드문만큼 많은 사람들이 타고 있을 거라는
스승님의 수많은 경험을 통한 지식이었다.

우선 목표물을 검색했다.
그리곤 한 여자를 대상으로 선택했다.

그녀에 관한 설명을 조금 하자면,
키는 적당하나 허리가 유달리 굵었으며,
까만색 가방에는 모 대학에 다닌다는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삐리리함, 그 자체였다.

영계를 좋아하는 내가
그런 노땅을 택한 데에는
그녀가 기습에 약할 것이라는
본능적 판단 때문이었다.

난 슬며시 다가섰다.
스승님께서 지켜보신다란 사실은
비록 나를 조금 긴장하게 하였지만
그간의 많은 수련으로
충분히 극복해 낼 수 있었다.

버스 손잡이를 잡고 있는
그녀의 오른편 겨드랑이 속으로
슬며시 손을 밀어 넣었으며,
기습은 적중했다.

* 중간생략 --+

무사히 완벽한 첫 실습을 마치고 버스를 내려올 때
스승님의 얼굴에는
따뜻한 미소가 가득했다.

난 해냈구나란 사실과
앞으로 세계 최고의 치한이 될 수 있다는 희망으로
너무도 가슴이 뭉클하였다.

스승님 역시 훌륭히 제자를 키워냈다는 생각으로
무척이나 만족하시는 듯 했다.

그것이 스승님의 기쁨일지라...

난 세계최고를 향해 부단히 노력하겠다.



3672/0230 건아처


본문 내용은 9,855일 전의 글로 현재의 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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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rst Written: 11/06/1999 04:17:00
Last Modified: 02/27/2025 10:19: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