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큰맘 먹고 비싼 구구콘을 사들고 놀이터로 향했다.
벤취에 앉아 인생에 대해 생각했다.
점점 작아지는 구구콘을 바라보며 인생의 허무를 느꼈다.
더할나위 없이 작아진 구구콘을 바라보니 눈물이 앞을 가린다.
그 때 멀리서 미끄럼틀 타던 여자아이 하나.
아이 : 아저씨 왜 울어?
백수 : 아..아냐 아저씨 우는거 아냐.
한창 자라나는 새싹같은 아이에게
인생의 허무때문에...
작아지는 아이스크림 때문에 운다고 할 수는 없는 노릇.
아이 : 아저씨 나 한입만...
조금 있다 한 아이가 헐레벌떡 내 앞으로 뛰어왔다.
헐떡보이 : 아저씨 여기 500원짜리 굴러오는 거 못봤어요?
내 발밑에 뭔가가 반짝이는 걸 발견했다.
다행히 그 아이보다 먼저.
잽싸게 오른발로 동전을 덮고 말했다.
백수 : 저쪽으로 가던걸?... ☞
아이 : 고마워요.
백수 : "자 이제 나와 동전아, 나쁜 사냥꾼은 갔어"
아이가 사라지자 아쉬웠던 구구콘을 다시 하나 사서 벤취로 돌아왔다.
미끄럼틀 타던 그 아이도 다시 돌아왔다.
아이 : 아저씨...나 한입만...
어제 과소비로 인해 오늘은 좀 싼 돼지바를 사들고 놀이터로 나갔다.
어제 그 아이가 없음을 확인하고 안심하고 돼지바를 깠다.
순간 뒤에서 누가 내눈을 가리며 뻔한 질문을 했다.
"누구게?"
백수 : 글쎄...
하지만 돼지바를 든 오른손엔 마비가 왔다.
가슴도 철렁.
백수 : 혹시...
난 오늘도 눈물을 흘려야만 했다.
아이 : 아저씨...
오늘은 돼지바네...
한 입만...
오늘은 이 아이가 다 먹고도 가지 않고 내 옆에 바싹 다가앉는게다.
아이 : 아저씨는 뭐하는 사람이야?
백수 : 글쎄다...
아이 : 아저씬 늦게 들어가면 엄마한테 혼나?
백수 : 혼나...
아이 : 아저씬 이름이 뭐야?
백수 : OOO.
아이 : 아저씨 내가 귀찮아?
백수 : 보기보다 똑똑하구나...
아이 : 아저씨 여보 있어?
백수 : 아직 여자 친구라는 것도 없어.
아이 : 왜?
백수 : 아저씬 여자들이 좋아하는 돈 많은 사람이 아니거든.
아이 : 그럼 내가 여자 친구 해줄께.
백수 : 조건은?
아이 : 한 입.
우린 그렇게 어설프게 애인 협정을 맺었다.
다음 날부터 놀이터로 향하는 내 손엔
두 개의 아이스크림이 항상 들려져 있었다.
그 아인 항상 벤취에 앉아 날 기다리고 있었다.
아이스크림을 다 먹고 나선...
내 무릎에 누워 잠을 자기도 했고
어슬픈 내 옛날 얘기에도 그아인 즐거워해줬다.
5월 5일 어린이날.
놀이터엔 애들이 하나도 없을꺼란 생각에...
그리고 그 아이도 오늘만은 없을꺼란 생각에
아이스크림을 하나만 사들고 놀이터로 갔는데
내 여자 친구 은미가 혼자 벤취에 앉아 있는 것이 아닌가.
백수 : 오늘 어린이날인데...?
아이 : 엄마 아빠가 바쁘셔...
백수 : 그렇구나...
아이 : 오늘은 한개네?
백수 : 아..응. 니꺼야.
난 오늘 배가 불러서...
아이 : 같이 먹어 그럼.
백수 : 그러자! (활짝)
아이는 내 손을 잡고 연신 행복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내가 같이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애인을 행복하게 해준다는 사실이 기뻤다.
백수 : 우리 대공원갈까?
아이 : 정말?
아이를 기다리라고 해놓고 쏜살같이 은행으로 튀어갔다.
10만원.
잔액 1630원....
까마득했다.
시골에 계시는 공포의 마더얼굴.
"네 이 우라질 녀석!
서울 가서 대통령 되어 오겠다고 소 팔아서 올라가더니
다섯살짜리 지집에 홀려 애미 피땀흘려 보낸 돈까지 다 말아먹는거냐!"
"마마...그게 아니예요..그게...그게..."
난 심하게 머리를 휘젓고 있었다.
은행 청경이 가스총을 찬 채 바닥에 떨어지는 내 비듬을 쓸고 있었다.
은미를 목마태우고 대공원으로 향했다.
놀이 기구를 타며 활짝 웃는 은미를 보며 사뭇 흐뭇했다.
'아...오늘은 체력의 한계다. 더이상 걷지도 못하겠어'
놀이터 벤취까지 은미를 업어와서는 턱 주저 앉았다.
은미가 내 곁에 다가오더니 내 볼에 살며시 입맞춤하는것이 아닌가.
볼을 어루만지며 멍하니 은미를 바라보고 있자니
은미도 부끄러운지 얼굴이 붉어진 채로
"아저씨 오늘 재미있었어. 내일 봐"
집으로 오는 길에 볼에서 손을 뗄 수가 없었다.
어머니 : 다음달까지 직장 못 구하면 당장 시골로 잡아들일테다.
백 수 : 어머니, 제발 자식의 꿈을 그런 식으로...
어머니 : 꿈이고 나발이고 사발이고
니 통장 오늘 조회해봤더니 1630원 남았더구나.
알아서 해라.
이번 주엔 돈도 안부칠테니까..!
백 수 : 어머니...
NO CARRIOR...
고민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잘 쓰면 한 달도 버틸 수 있는 거금 10만원을 어제 하루에 다 썼으니...
이것 참 살길이 막막하다.
게다가 은미는 바라는 게 점점 더 많아진다.
멀리서 한 남자가 여자에게 꽃을 선물하는 걸 보구선..
아이 : 아저씨. 아저씬 애인 은미한테 꽃 안사줘?
그리고 아이스크림도 더 고급을 원하기 시작했다. 구구콘도 아닌.....
아이 : 아저씨 우리 이제 구구크러스트...응? 구구크러스트...
내가 지금 뭘하고 있는걸까...
한낱 어린아이한테 정신이 팔려서 내 인생의 몇페이지를...?
다음 날, 놀이터로 향했다.
손엔 아무 것도 들지 않은채로.
아이 : 아저씨 안녕.
백수 : 그래 안녕
아이 : 어? 아이스크림은?
백수 : 이제 안사.
아이 : 왜?
은미는 잔뜩 긴장한 눈치였다.
애써 냉정한 표정을 흐리지 않은채로 입을 열었다.
백수 : 우리 헤어져.
은미는 이럴 순 없다며 땅을 치며 통곡했다.
나 역시 가슴이 아팠지만 냉정하게 뒤돌아서 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요 며칠 놀이터는커녕 밖에도 나가지 않고
방구석에 병든 병아리마냥 겔겔거리고 있다.
눈을 감으면 은미의 활짝 웃는 모습이 떠오르곤 한다.
은미는 어떻게 지낼까...? 그 아이 감기나 걸리진 않았는지...?
은미는 내 인생에 있어 한낱 장난에 지나지 않는 아이가 아니었다.
삭막했던 내 인생에 끈끈한 정과 사랑을 알려준 작은 천사였다.
이별 후 힘들어하는 남자의 유치한 괴로움이 싫어
여자도 멀리했던 내가 은미로 인해 사랑에 눈을 뜨게 된것이다.
퍼뜩 신문을 펴 들었다.
"인부모집. 일당 65000원..."
이틀 간 노가다를 뛰었다.
뜻밖에도 은미는 벤취에 앉아 있었다.
요 며칠 내가 안온 사이에도 계속 나왔는가보다.
가까이 가니 인기척을 느낀 은미가 고개를 들어 날 바라본다.
어느 새 눈시울이 붉어진 은미가 울먹거리며 내게 달려와 안긴다.
미처 앉지 못한 탓에 은미는 내 가슴팍에 안기지 못하고 무릎에 매달려 운다.
백수 : 은미야, 선물.
뒤에 감추었던 튤립 몇송이와 구구크러스트.
그리곤 키를 낮춰 울고 있는 은미의 눈을 소매로 훔쳐주고 꼭 안아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