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98년 8월 5일 KE8702편에 탑승했던 승무원입니다.
뉴스와 신문을 통해서 본 일부 승객들의 인터뷰 내용들이 사실과 너무도 틀려
그점을 해명하고 저희의 실추된 명예를 회복하고자 이렇게 글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부디 참고해주시길 바라며...
먼저 상황을 간단하게 설명드리겠습니다.
착륙한 비행기가 급회전하며 오른쪽으로 기우는 순간,
비행기 천정이 일부 무너져내리고 산소마스크들이 떨어지는 게 보였습니다.
그리고는 바로 불이 몇 번 깜빡이더니 정전이 되었고 비행기는 이내 멈추었습니다.
일부 승객들은 박수를 쳤습니다.
그만큼 사태가 심각하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다음 순간 사무장님의 "승무원, 비상구를 열고 슬라이드 펴!"!란 방송이 들렸고
객실 왼쪽 세 번째 문에 앉아 있던 저는 담당 승무원과 함께 문을 열었습니다.
그러나 날개 위에 위치하고 있는 우리쪽 문의 슬라이드가 펴지는 순간
저는 날개와 엔진에서 불꽃이 일며 불이 타오르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문으로 탈출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판단, 반대편 문쪽으로 달려갔습니다.
그 쪽도 역시 날개가 심하게 파손된 상태인데다,
슬라이드가 바람에 날려 바닥까지 내려가지 않은 상태라
그 비상구 담당 승무원이 그 문으로는 탈출이 위험하다고 판단,
승객들을 좌우로 나누며 앞뒤 비상구를 이용하라고 소리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바로 앞쪽인 두 번째 문으로 일부 승객들을 이동시켰습니다.
지금부터는 해명 위주로 하겠습니다..간단 명료하게 그러나 정확히!!!!!
첫 번째로 여러분들이 가장 흥분하시는 대목..
바로 승무원이 승객보다 먼저 탈출하더라는 말에 대해서입니다.
에상되지 않은 비상착륙 시
승무원은 그 인원으로 전체 승객들을 탈출시키는 데 상당한 어려움이 있습니다.
(이번 경우 14명이 360여명을 탈출시킴)
따라서 시간적 여유가 있을 때에는 군경, 건장한 남자 순으로 협조자를 선정해
슬라이드 밑에 가장 먼저 내려보낸 뒤 위에서 내려가는 승객들을 엉키지 안고
또 튕겨나가지 않도록 잡아끄는 역할을 하도록 요청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번 사고처럼 협조자를 선정할 시간적 여유가 없을 때는
담당 비상구에 두명의 승무원이 배치되는 경우 둘 중 한 명이 내려가
그 협조자 역할을 하는 것이 원칙으로 되어 있고
실제로 그렇게 안전교육을 실습하며 익혀왔습니다.
제가 두 번째 문으로 달려갔을 당시 그 앞쪽 승객들은 이미 거의 빠진 상태였고
저는 세 번째 문쪽에 있던 승객들을 그 쪽으로 소리질러 불렀습니다.
달려온 승객들은 슬라이드를 타고 내려갔습니다.
그러나 기체가 오른쪽으로 기울어 슬라이드가 너무 완만히 펴져있는 상태라
사람들이 끝까지 내려가지 못하고 끄트머리에 뒤엉키는 형상이 되었습니다.
그 문 담당 승무원이 있었기에 저는 슬라이드를 타고 내려가
못 일어나는 승객들을 잡아 일으키고 내려오는 승객들을 부축해서
빠져나올 수 있도록 도와주었습니다.
그 협조자 역할을 제가 했고 그래서 승객들보다 먼저 내려간 것입니다.
그리고 저는 승객들이 다 내린 후 기체에 잔류 승객이 없는지를 확인한
승무원 세 명이 내려오는 순간까지 슬라이드 아래에 있었습니다.
두 번째, 승무원이 승객들에게 폭발할 지 모른다고 위협해
우왕좌왕하게 만들었다는 부분입니다.
비행기 사고에서 1차가 불시착이라면
2차 사고로 보통 규정하는 것이 항공기 폭발입니다.
괌 사고때도 그랬고 제주2033편도 그랬습니다.
당시 비행기는 첫 번째로 불시착했고 몇 분 후 폭발했습니다.
이번 사고에서도 엔진에 불이 붙었었고
그것은 곧 폭파 위험으로 치닫는 것이였기에 이 때 승무원의 역할은
승객들을 가장 빨리 신속하게 비상구로 탈출시키는 역할입니다.
따라서 승객들이 들었다는 승무원의 말은 위협이 아니라
그만큼 빨리 사태의 심각성을 파악하라는 의미였습니다.
(일부 승객들은 보통 때처럼 짐을 꺼내는 등의 여유를 보이고 있었음)
세 번째 , 비상구가 두 개만 열렸다는 부분에 대해서.
불시착 후 바로 사무장님의 비상구 오픈하라는 방송이 나왔고
담당 비상구에 있던 승무원들은 일제히 문을 열었습니다.
위에서 설명했듯이 날개측에 있는 세 번째 문 두 개, 2층에 있는 한 개를 제외한
나머지 아홉 개의 비상구가 모두 열였고 작동되었습니다.
(자료 화면에 나와있는 전부 오픈된 슬라이드를 못보셨습니까...
눈으로 보이는게 있는데 보지 못한 이야기를 진실로만 받아들이시는지요,,,,,,)
네 번째, 한꺼번에 승객들이 몰리는 바람에 부상자가 생겼다는 부분에 대해.
세 번째 비상구를 사용하지 못한 승객들이
두 번째와 네 번째 비상구로 달려갔습니다.
슬라이드가 정상적인 위치에서 터지면 그 높이가 11m가 되며
이는 인간이 가장 공포를 느끼는 높이라고 합니다.
또한 뛰어내리면 청바지가 찢어질 정도로 마찰이 심합니다.
그만큼 슬라이드를 타는 것이 동네 미끄럼틀 타는 것처럼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이번에도 슬라이드를 타는 과정에서 부상자가 생겼다고 합니다.
여기서 한 가지 중요한 것은 안전을 위해 탈출 시에는 간단한 소지품이외엔
가지고 내려선 안된다는 점입니다.
심지어 여성들의 하이힐이나 뾰족한 핀도 금지되어 있습니다.
그로 인해 슬라이드에 손상이 가면 다른 승객들의 안전이 위협을 받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승객들은 탈출하라는 승무원의 지시에도 불구하고
각자 커다란 짐을 챙기고 있었습니다.(물론 전부는 아닙니다)
짐꾸러미와 승객들이 슬라이드에 동시에 내려오니 그상황에서 다치는 사람이
없을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대부분 승무원이 예쁘게 웃고 서비스만 잘하는 게
우선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번 사고 때 바보같은 승무원들이 승객들을 버리고 먼저
도망갔다고 생각하시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저희는 서비스보다도 우선하는 첫째가 안전이라고 입사하는 순간부터
세뇌되도록 교육을 받고 있습니다.
1년에 한번씩 비상착수훈련과 정기안전훈련을 실시하고
자격증도 발급하고 있습니다.
그야말로 저희는 세계항공사가 정해놓은 규칙에따라 교육과 훈련을 받기에
위험한 순간만큼은 승객들의 시야보다
더 넓게 보이고 더 빠르게 판단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처럼 370명을 3분 안에 탈출시킬 수 있었다고 자부합니다.
저는 우리 승무원들이 잘했다고 자랑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무엇보다도 저희는 최선을 다했고
우리의 행동에 떳떳할 수 있기에 이렇게 글을 올리게 된 것입니다.
저희에게 쏟아지는 비난은 일부의 것입니다..
오히려 침착하게 대처해주어 고맙다고 몇 번씩 인사하는 승객들과
자처해서 일본인 승객에게 상황 통역을 해주는 고마운 분들도 계셨기에
저희는 마지막까지 힘을 낼 수 있었습니다.
그러한 극한 상황에서 기념 촬영을 하는 승객들이 있었다는건
왜 방송에 안나오는지 모르겠습니다.
과연 누가 안전불감증이란 말입니까.....
이 글이 얼만큼이나 반영이 될까요....
저는 눈물을 닦으며 떨리는 손으로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삼자들은 그냥 저런 썩어빠진 승무원들같으니...하고
잊어버릴 수도 있는 문제이지만,
저희 당사자들만큼은 평생에 불명예로 기억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부디 저희의 노력이 헛된 것이 되지않도록 도와주십시요..
진심으로 부탁드리겠습니다.
더운 날씨에 이 두서없는 글을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건강하십시요....
그리고 살아있는 오늘을 감사하시길.....
죽음의 문턱까지 다녀온 제가 감히 말씀드리며.....
이만 줄이겠습니다....